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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창고/내 책꽂이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by 알센 2008. 10. 31.
달콤한 나의 도시달콤한 나의 도시 - 10점
정이현 지음/문학과지성사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젊고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요즘판 버젼같다고도 할 수 있고,  여고생들이 열광하는 하이틴로맨스의 건전하고 우아한 버젼같은 부분도 살짝 있는 듯 한 재미있는 책이다. (사실 하이틴 로맨스 안읽어봤네. )  키친에 이어 또 달렸다. 12시 넘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1시까지 읽고 그 담날부터 로스트도 버리고 출퇴근길에 쏙 빠져들어 바로 끝내줬다.

글자도 많고 내용도 빡빡 차 있지만,  쉽게 쉽게 술술 읽힌다.  옛날에 블로그에 적어놨던 생각들도 오은수의 생각이 되어 잘 정리되어 표현되어 있다.   언제쯤 결혼할 것이냐는 옛날 누군가의 질문에 맘에 드는 남자가 결혼하자고 하면 그때 하는거라고 답을 했었던 것도 생각나고, 사람들이 옛사랑을 추억하는 이유는 그 사랑이 아니고 젊은 시절의 자기가 그리워서라는 생각도 그렇고.  지나가는 어린 연인들을 보면 그런생각이 부쩍 든다.   젊고 어려서 너무너무 이쁜 것들.

드라마로 만들어도 정말 재미있었을 것 같다.  31살에서 32살이 되기를 기다리는 노처녀가 될까 말까 하고 있는 주인공 오은수(95학번에 있던 동명의 단아한 후배 생각이 났다)를 중심으로 처녀들의 저녁식사도 약간 비슷하게 그녀의 베스트 프렌드 두여자의 이야기가 뜨문뜨문 나온다.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법 하고, 상상만 해볼 법도 하고 한 이야기들을 참 잘 엮어 놨다. 

7살 연하에 영화를 만드는 이쁜 꿈을 가진 배려심 많고 철은 별로 없는 남자.  너무 평범하고 완벽한 남편의 조건을 다 갖추었는데....어딘가 이상해서 알고보니 남의 이름을 빌려서 살고 있었던 남자... 친구의 사촌이고 아버지가 남긴 부동산으로 백수임에도 먹고살 걱정하나 없으면서 서로의 연애 상담을 하는 남자.. 대략 은수씨한테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세 남자다. 

세명 다 어찌 그리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지..아니면 그저 내가 회사원이라서 볼 수 없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평범한 사람들을 작가가 개성 강하게 그려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들 참 그럴싸한 남자들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이 세명의 남자 사이에서 감정과 현실의 저울질을 하고 있는 은수씨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만 하면 따분할 것이고 뭔가 행동의 이유도 좀더 필요할 것이니 은수씨의 가족도 나오고 회사도 나오고 친구들도 나오고 그렇다.  은수씨는 속마음을 잘 얘기 안한다.  자존심이 무척 강하니까.  그래서 상황은 소설에 담고도 남을 만큼 복잡하게 되어 간다. 

은수씨네 회사에 나오는 사장, 이사, 부장, 이민정, 장선배....상당수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회사에서 늘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면 은수씨도, 재인이도, 유희도...어떤 어떤 면에서 알고 있는 친구들이 생각난다.  어쨌든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은수씨 엄마 아빠도 엄마한테 오랜 남자인 친구가 있었다는 점을 빼면 우리 윗세대의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 중에 하나이다. 

책의 끝까지 급하게 달리는 이유 중에 하나는 결말이 어떤지 궁금해서이다.  그런데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끝이 없다.  2편도 가능한 소설이다.  평범하고 작은데 기뻐하는 소박함이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왜 왕자님과 공주님이 결혼하는 것으로 동화책들이 다 끝나고, 그 뒷이야기가 나온 것은 거의 없는지 - 좋은 예외는 슈렉이다. - 모르겠다.  이 책은 끝이 없었다.  모호했다. 아무것도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되어서 계속 로맨틱한 상상도 서글픈 상상도 할 수 있는 책이다.  32살이나 되었는데..... 그래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아마도 32살의 51%는 남편도 있고 직장도 있고 애도 있는 소박한 행복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고, 그것이 행복임에도 불구하고 소설화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남들도 똑같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세대를 건너서 갖는 갈등도 있고, 그런 갈등의 해소도 있지만 소설로 하기엔 뭔가 부족하고.....그나마 결혼 이후 생활의 갈등의 극대화가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이것은 극단적일 것이고.....

꼭 쉬운 것만은 아니라믄 참 평범하고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 대신 울어도 주고 웃어도 주고, 그리도 대체로는 아이의 레벨업에 행복해하면서 남편과 나의 승진에 만족해 하면서 살아야지.
앞으로도 쭈욱~




http://arsene77.tistory.com2008-10-31T00:37:370.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