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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2002.11.24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 Egoist

by 알센 2008. 10. 1.
경희가 쓴 글

귀하게 자란 탓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까지 성격을 버린 아름다운 소녀들이 모두 그렇듯이, 그녀는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젊었기 때문에(스물하나인가 둘이었다), 그녀의 그러한 성향을 상당히 불쾌하게 느끼곤 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는 습관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그녀 자신도 마찬가지로 상처를 입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 외에는 자신을 제어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녀보다 훨씬 강한 누군가가, 그녀의 몸의 어딘가를 요령 있게 절개해서 그 에고를 해방시켜 주었다면, 그녀도 훨씬 편해졌을 것이다. 그녀 역시 구원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

그녀가 어떠한 이유로-이유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자주 있었지만-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혀야겠다고 결심을 하면, 어떠한 왕의 군대로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 불쌍한 희생자를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능숙하게 막다른 골목으로 유인해 벽에다 밀어붙이고, 마치 잘 삶아진 감자를 '주걱' 으로 으깨듯이 완벽하게 상대방을 때려눕혔다. 그 뒤에는 얇은 종이 정도의 잔해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것은 분명히 대단한 재능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결코 논리적인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상대방의 감상적이 약점을 순식간에 알아차릴 수는 있었다. 그리고 마치 무슨 야생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꼼짝 않고 몸을 엎드리고 호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다가, 타이밍을 포착해서 상대방의 부드러운 목덜미를 덥석 물어 그것을 갈기갈기 찢었다. 대개의 경우 그녀의 말은, 제멋대로 갖다 붙이는 억지거나 요령 좋은 속임수였다.


***

그녀의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다. 세가지 포인트를 확보하기만 하면, 그 대부분의 특질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명하게 보이고, 활기에 차 있고, 요염하다는 세 가지 말이다.

그녀의 몸집은 작고 야위었으나 멋지게 균형 잡힌 몸매라서, 온몸에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눈은 반짝반짝 빛났으며 입술은 고집스럽게 일직선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따금 생긋 미소를 지으면, 그녀 주위의 공기는 무슨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한 순간에 부드러워졌다.

나는 그녀의 인품에 호감을 갖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미소만은 좋아했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래 전에, 고등 학생 때에 영어 교과서에서 '봄에 사로잡혀서' 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의 미소는 꼭 그러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누가 따뜻한 봄날의 양지를 비평할 수가 있겠는가?

***

응석둥이로 키우거나 용돈을 마음대로 쓰게 하거나 하는 정도의 일은 어린애가 응석둥이가 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에 있는 어른들의 성숙되고 굴곡된, 다양한 종류의 감정의 방사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책임을 누가 떠맡느냐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 책임을 회피하거나, 아이에 대해서 모두가 좋은 얼굴을 하고 싶어할 때, 그 아니는 확실히 응석둥이가 된다.

마치 여름날 오후에 해변의 모레사장에서 강한 자외선에 알몸을 노출시키듯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연약한 그들의 '에고'는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손상을 입게 된다. 그것이 결국은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응석을 모두 받아 주거나 아무때나 용돈을 많이 주거나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에 따르는 부차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중

글쎄 현재 팽배해있는 공주문화와 공주문화를 조장하는 커다란 문화의 한 흐름을 리얼하게 꼬집어 말해주는 단편. 이기주의자라는 것이 싫으면서도 그녀를 결코 미워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잘 나타나있습니다. 바로 그녀의 미소때문이지요.
겉으로 보이는 physical 매력에 알면서도 허우적거리는 많은 온달들을 보아왔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들.후후. 살다버면 어쩔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인생의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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