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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빈이 창고

직장맘의 모유수유,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by 알센 2008. 12. 31.
말도 많고 탈도 많은 - 젖몸살에 먹이고 싶어도 나오지 않는 사람에 뭐 기타 등등등 - 모유수유.  직장맘의 모유수유 그것은 또다른 세상이었다. 정말로.

처음 2개월 동안 완모(분유 없이 모유만 먹이는 상태)를 성공시키고 어느정도 안정된 자세로 젖병 소독 및 분유타기보다 모유수유가 훨씬 편하게 된 사정은 생략하겠다.  요즘 모유수유가 유행인지라 다른 엄마들도 다 겪는 비슷한 어려움일 거라서.  직장맘의 완모는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4개월 반의 직접 수유를 하는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복직을 하게 되었다. 

들어갈 플젝이 결정되었고 장기적으로 한 곳에 있다는 것도 나름 괜찮았고 먼저계신 선배한테는 이런저런 유축을 해야 하는 것도 설명했더니 의무실도 있고 집에서도 가깝고 하다고 해서 흔쾌히 수락을 하였고 집도 가깝고 차도 비교적 덜 막히는 곳이라 각종 장비들을 들고 차로 다니기로 했다.

선배와 상의하여 고객의 눈치가 보이고 심하게 까칠한 고객이니 일단 비밀로 하기로 했다. - 이것부터가 이론과 현실은 참 다른 것이다.  이론은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는 늘 자랑스럽고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숨어서 유축하고 이럼 안되고 정당하게 법으로 보장된 시간을 요구하라는 것인데..그것은 이론이다 ^^

그 다음은 시간과 장소의 문제였다.  그 좋다는 의무실 언니는 꽤 쌀쌀 맞았고, 냉장고는 약이 몇개 들어가는 아주 작은 것 밖에 없으니 장소를 제공해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며 알아서 보관하라고 했다.  사무실의 냉장고도 음료수나 몇병 들어가는 작은거였고 의무실은 점심시간이면 문을 잠그고 6시면 칼퇴근을 하는데 오픈 초기라서 열두시 넘게도 야근을 해야했던 나로서는 난감할 따름이었다.  - 이론은 3시간에 한번씩을 강요하는데 이것도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규칙적인 시간 간격으로 유축을 해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고 고객의 눈치가 심하게 보이고 수시로 찾을수도 있는 상황이라서 나로서는 점심 저녁 시간 같은 때가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대략 11시 경과 4시경에 가기로 하고 첫날 하루는 그냥 보관도 맡아준다고 하였고 콜센터에 유축하는 분이 4시 반쯤 오니 한번 물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첫날은 업무에 적응하고 말새도 없이 하루종일 어떻게 애를 먹여살리나 고민만 하면서 보냈다.  그렇지만 해결도 하지 못한채로.

둘째날은 큰~~~냉장가방에 유축기와 커다란 얼음들과 보관통을 다 넣고 들고갔다.  얼음을 왕창 넣으니 얼추 퇴근시간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유축하는 분을 만났다.  이런저런 고충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콜센터의 여직원 휴게실의 디오스 냉장고에 보관을 해주신다고 하고 또 의무실이 문 잠근 시간에 꼭 유축을 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휴게실을 이용하라고도 해주셨다.  정말 고마운 미경씨였다.  하지만 그 쪽은 출입문을 열때 누군가가 열어줘야만 했다.  고마운 미경씨는 24시간 교대로 밤에도 누군가가 있긴 하니까 자기한테 연락하면 문을 열어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래서 몇일은 또 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유축기는 차에 가져다 두고 가져오고 뛰어다니며 이삼일을 그렇게 버텼다.  그러다가 늦은 밤 휴게실을 이용해보려고 하였지만 콘센트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 늦은밤 회사 앞에 살고 있는 정이언니네 집으로 유축을 하러 뛰었다.  그리고는 새벽 1시에 보관해둔 것을 찾으러 갔다.

그 후로 미경씨보다 더 고마운 정이언니네 집은 나의 시간과 장소와 보관 문제와 그리고 밥까지 모든것을 다 해결해 줘 버렸다.  수개월 동안 나는 점심과 저녁을 거기서 먹고 유축을 하고 회사에 돌아오는 생활을 했는데 언니가 거기에 살아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싸이월드의 옛글들을 퍼오다가 정이언니의 소개글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적어보고 있는 중이다. 

언니는 나보다 두달 늦은 딸이 있었고 모유가 부족해서 거의 분유수유를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곱절로 고맙고 미안했다.  그럼에도 그놈의 모유수유가 먼지...먹일 수 있다면 끝까지 해보자 하는 이상한 오기가 생겼었다.  뭔가 고객한테 당당하고 용감하지도 않고 어설픈데 그러면서도 계속 먹인 걸 보면 독하기도 하다.

12시가 되면 달려가서 일단 유축부터 하고 밥을 먹고 돌아오면 1시가 간당간당 했고 선배로부터 시간은 가급적 지켜달라고 한소리 듣기도 했다.  이게 초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양쪽 동시에 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시간이 많이 절약되니까.  그래도 30분씩도 걸리고 했었는데 나중에는 시간은 많이 안걸렸다. 한 6개월이 넘어가니까.  밥도 허둥지둥 먹고..그리고 양 안 줄일려고 물이며 국이며 밥이며 먹기도 엄청 먹었다.  돌아서면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뭐 그래봐야 몸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에 비해 너무 먹은 셈이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만 깔짝 거리는게 일인데.

생각해보면 7개월까지만 완모를 했으니 2개월 반 정도를 정말 열심히 유축을 한 것인데 그 기간이 너무너무 길게 느껴진다.  양이 약간 부족한 듯 하여 이유식도 5개월쯤부터 시작했었는데 지금 뱃골이 작은 아가를 보면 후회가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만7개월 이후부터는 하루에 한번은 분유를 먹이기로 했다.  이유식 양이 팍 늘어버려서 부족하진 않았다.  그런데 혼합수유가 잘 안되었다.  분유도 이도저도 다 싫다고 하고 유일하게 잘 먹는 분유는 더이상 생산이 안된다고 하고. 

10개월이 되어갈 때 그렇게 점심 때 유축을 먼저 중단하고....또 한 이주일있다가는 저녁 유축도 중단해버렸다.  남아있는 걸로도 낮동안 한참 먹일 수 있을 것 같아서 퇴근 후 수유와 밤중수유 2~3번 정도의 직수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10개월이 되었을 때 일주일간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그 뒤로 한 1-2주일은 또다시 밤중수유를 한 것 같다.  그럼 그 일주일은 어떻게 했냐.....뭐 손목 나가지 않을 정도로만 샤워하면서 고생 좀 해줬다. -_-;;;

어쨌거나 11개월 정도를 수유를 했으니 그 관점에서라면 나름 성공한 셈이지만 정이언니와 그리고 울엄마의 공이 참 컸다.  초기에 한달 정도는 집에 와서 저녁에 먹인 후에도 한번 유축을 하고 했었는데 - 양을 늘이기 위해 - 그 많은 깔때기며 젖병이며 엄마가 맨날 다 씻어주고 챙겨주고 했으니 망정이지 게으른 나로서는 내가 다 해야했으면 벌써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지후맘의 직장맘들의 이야기를 보면 이보다 훨씬 힘들게 한 사람들도 참 많다.  거기에 비하면 장소/시간/보관의 문제가 초기에 심각했었지만 정이 언니가 다 해결을 해줘버려서 어찌보면 쉽게 한 셈이다.  아마도 고객한테 한시간 더 일할테니 급한 회의가 없을 때 중에 적당히 비슷한 때 한시간 정도 시간 내겠다고 했더라면 좀더 편해졌을까? 상상도 해본다.  그런데 사람이란...한번 자리에없을때 또 유축하러 갔나보구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모든 자리비움을 다 그렇게 생각해버릴 수 있는 경향이 크고 그 분의 경우는 더더욱 그런 편이라서 말 안하고 한게 잘했다고는 생각이 든다.

까짓거 안되면 분유 먹이지라고 생각하고 맘 편하게 먹으라는 이론도 참 좋지만 쉽게 되지는 않는 부분이다.  이미 지난 2개월간 얼마나 힘들게 성공시킨 완모인데...금방 '까짓거 말지 머'가 되겠나. 

모유가 세상에서 너무너무 제일 좋다는 것은 진실일듯하면서도 자의에 반하여 모유수유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한테는 너무 씁쓸할 이야기일 것 같고.. 일단 익숙해지면 아기 동반 외출시 따로 젖병을 안싸갖고 다녀도 된다는데 물 안데워도 되고 언제든지 따뜻하고 신선한...뭐 이런 장점과 앞서 말한 다소 씁쓸한 장점과 그리고 엄마들이 모유수유를 계속 하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인 아기와의 유대감.  등등 때문인데...나 너무 독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모유수유.  그렇게 좋다는데 할 수 있는데까지는 누가 머래든 간에 최선을 다해서 한번 노력해보고 포기를 해도 해야지....하는 오기였다 싶다. 

(그리고 애기가 젖병을 안 먹어서..혼합수유를 거부해서.....등등...다른 어려움들도 참 많았다.  이녀석은 빨대로 컵에 먹기 전까지 한달쯤은 숟가락으로 매 이유식 후 먹는 분유를 먹였어야 했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여러모로 정말 대단하다.)